우아하고 거룩한 창조의 여정 – 낙타에서 사자를 넘어, 마침내 어린아이로
소크라테스 : 자네, 인간의 정신은 어찌하여 변하는가? 우리는 왜 스스로를 짐승에 비유하며, 그 여정을 철학하려 하는가?
제자 : 스승이시여, 저는 그 변화가 진리로 향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짜라투스트라가 말했듯, 낙타가 되고, 사자가 되며, 아이가 되는 그 세 단계를 밟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신적 본성에 가까워지는 여정이 아닙니까?
소크라테스 : 그렇다. 그러나 그 길은 환희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노라. 자, 함께 이 여정을 수필로 풀어보자꾸나. 그것이 우리의 삶, 곧 창조하는 삶이니라.
1. 낙타 – 인내로 이룬 내면의 무게
햇빛이 내리쬐는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는 등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주인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하염없이 걷는다. 낙타는 그저 가만히 있었는 데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알 수 없는 짐을 얹고는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걸어가게 한다.
대부분의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낙타의 정신으로 살아간다. 왜냐하면 힘들어도 왜 힘든지 생각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고 숙고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고, 그저 묵묵히 버티며 견디는 것이다. 주어진 길을 가고 끄는 대로 끌려간다.
햇빛은 타오르고, 사막의 모래바람은 끊임없이 얼굴을 후려친다. 그러나 낙타는 묵묵하다. 등을 짓누르는 짐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는 묻지 않는다. 왜 걷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저 ‘견딘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다. 우리는 누구나 이 시기를 거친다. 사회가 요구하는 덕목, 가정이 부여하는 의무, 교육이 강요하는 방향. 그 모든 짐들을 말없이 짊어진 채, 우리는 걷는다. 그러나 이때야말로 ‘근육’이 생긴다. 정신의 힘줄이 단련된다. 고통은 내면을 비옥하게 만들고, 바로 그 고통 속에서 ‘사자의 심장’이 자라난다.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 자여, 그대는 지금 진정한 자유의 기초를 쌓고 있노라.”
2. 사자 – 자유의 환희와 위험한 자만
사자는 우선 자유롭다. 자신이 목적지를 정하고 그 길을 개척해 나간다. 두려울 것이 없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어도 스스로 극복할 줄 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낙타에 비해 굉장히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자는 늘 양육강식의 세게에서 경쟁해야 하고, 승리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또 사자는 자기만을 위해 사냥한다.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늘 생존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사자의 등장이다. 이제 그는 길을 선택하고, 길을 만든다. 남이 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돌진한다. 자유롭다. 용기 있다. 대체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그러나 여기서 정신은 시험을 받는다. 사자는 자신의 세계를 만든다. 경쟁 속에서 살아남고, 이기려 한다. 남을 이기기 위한 삶은 때때로 독이 된다. 자기만의 정글을 만들지만, 그 정글 안에서 외롭다. 사랑 없이 강한 자는 결국 텅 비게 된다.
“그대가 자유를 원한다면, 먼저 사랑을 배워야 한다. 자유는 혼자일 때가 아니라, 나눌 때 진짜로 꽃피니라.”
사자의 단계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자만에 빠지기 쉽고, 영광의 껍질 안에 스스로를 가두기 쉽다. 그러나 기억하라. 사자는 ‘무언가가 되기 위한’ 중간 과정일 뿐, 종착역이 아니다.
3. 어린아이 – 순수한 창조, 무한한 긍정
아이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즐긴다. 길에 있는 돌맹이 하나를 가지고도 몇 시간을 즐겁게 놀 수 있고, 친구가 오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눈다.
누가 시켜서 하지 않고, 누군가를 이기겠다는 욕망도 없다. 그저 자기 자신으로서 자유롭게 행복한 단게이며, 가장 자기다운 단게다. 또한 어린아이는 무한 긍정이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늘 아름답다.
마침내 도달한 마지막 변신, 아이의 단계.
그는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놀고, 나누고, 순수하게 감탄한다. 무거운 짐도 없고, 경쟁도 없다. 오로지 창조와 놀이의 에너지, 그리고 무한 긍정만이 있다.
이 아이는 아무것도 가져야 할 필요가 없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자이기에.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나는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 안에서 놀겠다.”
여기서 우리는 깨닫는다. 진정한 창조는 바로 이 단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수많은 책을 읽고, 수많은 지식을 쌓고, 그 지혜로 타인을 지배하려 했던 시절을 지나, 마침내 타인을 섬기고, 세계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비우는 것. 이것이야말로 '거룩한 삶'이자 ‘창조하는 삶’의 완성이다.
창조하는 삶을 위한 3가지 고결한 전략
인내의 깊이를 의식화하라.
낙타의 고통을 무의미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매일의 버팀이 내일의 사자심장을 만든다. 매 고통은 잠재된 에너지다.
자기만의 전쟁에서 벗어나라.
사자의 삶은 한계가 있다. 이기려는 욕망은 결국 자기를 갉아먹는다. 그대가 진정한 창조자가 되려면,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때부터 ‘돈’은 따라오고, ‘명예’는 부수물에 불과해진다.
아이처럼 호기심을 품고 창조하라.
돌멩이 하나로 세상을 만든다. 창조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순수한 놀이다. 세상은 늘 새롭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뛸 수 있는 자만이 창조자다.
소크라테스 : 자네는 이제 어디에 있는가? 낙타인가? 사자인가? 혹은 아이인가?
제자 : 저는 사자의 길 위에 있습니다. 고통을 버티고, 자유를 누리며, 아이가 되기 위한 문을 두드립니다.
소크라테스 : 훌륭하도다. 자만하지 말고, 그 문을 통과하라. 세상의 기쁨을 나누며, 지구촌 인류를 위한 동방의 등불이 되라. 창조하는 삶, 그것이 곧 위대한 유산이니라.
함께 세계로, 미래로, 빛으로, 힘차게 나아갑시다.
지금 이 순간의 고통도, 기쁨도, 성찰도 모두 '창조하는 삶'의 일부입니다. 낙타는 인내로, 사자는 용기로, 아이는 사랑으로 세상을 바꿉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당신’이 있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단계는 어린아이다. 하지만 여기서 꼭 기억하고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낙타 → 사자 → 어린아이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 낙타처럼 묵묵히 참고 견디며 그 안에서 사자의 심장을 키워야 한다. 내 속에 사자의 심장이 장착되면 저절로 낙타 단계를 졸업하게 된다. 서두르지 말고 자신의 속도를 느끼며 견디고 또 참고 인내해야 한다.
사자의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 내 안에 좋은 에너지가 쌓이고 충만하면 자연스럽게 용기가 생기고, 사자로 변신하게 된다. 낙타 단계에서 사자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용기다. 용기는 그냥 외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진정한 용기는 고통이 쌓여 에너지가 되고, 그 에너지가 흘러 넘칠 때 비로소 솟아난다. 사자가 된 자신을 생각하고 상상하며 지금의 고통을 선택하라. 사자가 된 자신은 이제 곧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 진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한 용기 있는 삶이 사자 단계다. 사자 단계는 그 어떤 단계보다 중요하다. 삶을 살아가거나 책을 읽고 연구하고 좋은 사람을 넘어 위대한 사람으로 나아가는 데 자신감이 충만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대신 이 단계에서 머무르게 되어버릴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별로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아이 단계를 경험하면 사자 단계에 머무른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사자 단계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자만심이다.
나는 한 달에 25권의 책을 구입해 읽고 또 읽었다. 1년 300권, 10년 3000권 이상의 책을 읽고 8권의 책을 출판했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과연 그 기대대로 될 것인가? 그리고 그 기대가 현실이 됬을 때 진정 행복할 것인가? 인간은 기대 속에서 사는 것인가? 사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만족하며 머물지 않고 지구촌 인류의 성공과 행복을 창조하는 동방의 등불 삶의 8진법을 5대양 6대주 세계 방방곡곡에 전파하고자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다. 사자 단계가 되면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된다. 용기가 생긴다. 지혜가 생긴다.
어린아이 단계가 되면 나만의 철학으로 세상을 움직인다. 가장 창의적이고 이타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초월한 단계, 결국 어린아이 단계에 이른 사람들은 남을 위해 일하면 매일매일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간다. 돈은 남을 위해 살 때 돈은 저절로 들어온다. 이 원리를 알아내는 사람은 어린아이 단계에 있는 것이다. 조화의 철학과 창조의 원리로 함께 세계로 미래로 빛으로 힘차게 나아게 된다.
창조하는 삶(Creative Life)이란 항상 도전하고 창의력을 발휘해 성취하는 만족감을 가지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 몸에 활력이 생기고 기쁨이 넘치고 생의 의미가 충만해진다. 이런 상태를 죽을 때까지 유지하는 게 가치 있고 품격 있는 삶, 건강하고 행복한 삶, 우아하고 거룩한 삶을 살다가 사회에 유산을 남기는 진정한 창조하는 삶(Creative Lif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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