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도전정신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정신문화대국 통일대한민국으로 성장하고 발전한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 새마을운동 제창
1960년대 후반까지 초가집이 주류를 이루던 우리네 농촌이 1970년대 들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길이 정비되기 시작했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 지방 장관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창하였고 동년 5월부터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면서 1970년대 우리 사회를 휩쓴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근면ㆍ자조ㆍ협동’의 기치 아래 생활 태도 혁신, 환경개선, 소득증대를 통해 낙후된 농촌을 근대화시킨다는 취지로 1971년부터 정부 주도하에 전국적 범위에서 지역사회 개발 운동이 전개됐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로 실시된 정부 주도 하의 국민적 근대화 운동이었고, 70년대 한국 사회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이 운동은 박정희 정부에 의해 1971년 새마을 운동으로 명명되었고, 전국적으로 시행, 1975년에는 도시와 공장으로도 확대되었다. 1973년부터 새마을운동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전국민적 운동으로 확산시켰다. 1973년 1월 16일 대통령령 6458호로 내무부에 새마을 담당관실을 설치하고 그 산하에 4개의 과를 두었으며 3월 7일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에 새마을 담당관실을 설치했다.
1972년 1월 31일 경기도 고양의 농협대학 부설 독농가연수원에 각 지역에서 선발한 140명이 입교했다. 새마을지도자 교육과정의 출발이었다. 2주 간의 교육과정은 가나안농군학교(교장 김용기)와 안양 농민교육원(원장 김일주)의 훈련 과정을 참고해 만들었다. 농협대 김준 교수가 초대 원장을 맡았다.
교육받을 사람이 늘면서 그해 경기도 수원의 농민회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1973년 5월 31일 경기도 수원에 새마을지도자 연수원을 신설 건립하여, 이전까지 농협 대학에서 개설하여 운영하는 독농가연구원에서 실시해 오던 새마을 운동을 위한 농촌 지도자 교육과 양성 등을 맡게 하였다. 1972년 1,490명, 1973년 4,354명으로 피교육자 수가 증가하였으며 그 이후로 매년 6천 명 이상이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새마을운동의 성과는 하천 정비, 교량 건설, 수리 시설 확충, 농경지 확장 등을 통한 식량 자급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과 농어촌 전화, 농가소득 증대 등을 들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국 농촌에서 초가집은 이 때 사라졌다는 것으로 설명해도 될 정도. 현재에도 농촌에서 "새마을운동"이라는 문구가 갖는 힘은 대단하다.
새마을운동은 세계에서 상당히 높게 평가받고 있는 한국 정책 중의 하나이다. 대한민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에 영향을 준 것뿐만 아니라. 농어촌 지역의 빈곤 극복과 복지 향상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세계 개발도상국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우리보다 넓은 국토와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캄보디아,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는 1960년대 초만 해도 국민소득과 국내 총생산이 우리나라보다 높았던 아시아 국가들이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 중 국내 총생산이 세계 20위권에 드는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하나같이 기업보국(企業報國)의 정신을 앞세워 기업을 통해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부유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역경을 견뎌내고 삼성, 현대, SK, LG, 롯데라는 굴지의 기업들을 일으켰다.
정주영 회장이 포드와의 합작 관계를 청산하고 고유 모델 ‘포니’를 통해 국산화의 길에 들어선 것이나 이병철 회장이 다들 안 된다고 뜯어말리던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것, 그리고 SK 창업주인 최종현 회장이 기술 이전을 거부하는 일본에 맞서 사채까지 써가며 연구개발비를 조달해 세계 5번째로 폴리에스테르 필름 생산에 성공한 것은 정부도, 집단지성도 내릴 수 없는 과감한 결단이자 도전이었다.
이와 같은 도전정신은 창업 2세대, 3세대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기업이 위기에 처했거나 경영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중요한 변곡점마다 총수의 과감한 결단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한국 특유의 기업문화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리더 창조경영자 1만 2천명 육성!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기업의 명운을 건 도전은 오너의 결단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을 때 삼성이 과감하게 스마트폰 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단기간 내에 스마트폰 시장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었던 것도 집단지성의 결정이 아닌 오너의 결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창업 1세대들은 국익을 위한 정부 정책이라면 기업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발 벗고 나섰다. 정주영 회장은 국가적으로는 중대 인프라 구축 사업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돈도 안 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흔쾌히 나섰고 남북통일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었다.
경제 부흥의 중요한 계기가 된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유치와 성공적인 개최에도 이들 1세대 창업주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글로리더 창조경영자들은 개별 기업을 넘어 경제계 전반을 이끌며 후배 기업인들의 멘토이자 우산이 돼 주기도 했다. 이병철 회장은 1961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의 창립을 주도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으며, 정주영 회장은 1977년부터 11년간 전경련 회장으로 재임하며 대한민국 경제계를 이끌었다.
1. 글로벌리더 창조경영자의 결단력과 위기 대응 능력 : 현대의 정주영, 삼성의 이병철, SK의 최종현 회장의 결단력은 집단지성을 활용해 창조하는 삶을 이루었다. 새로운 산업에 참여하거나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위험을 기회로 승화시키는 등 큰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결단력이 성공을 위한 핵심 요소이었다.
글로벌비즈니스에서는 소위 말하는 큰 그림(Big Picture)을 그리는 일과 아주 세밀한 디테일을 챙기는 낱알 세기(Granularity)가 모두 중요하다. 트랜드를 따르기보다 새 길을 개척하길 선택하고, 자신이 만든 길로 사람들을 이끈다. 세상을 바꾸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제품에 대한 디테일을 집요하게 챙기는 것이다. 외관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디자인, 심지어 보이지 않는 내부의 부품까지 꼼꼼하게 따지고 살핀다. 엔지니어들이 볼멘소리를 내든 말든 창조경영자들은 그들을 다그쳐 고치고 또 고치게 만든다. 그렇게 제품의 디테일을 갈고 닦은 결과 '최고의 성능'이라는 큰 그림을 위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바야흐로 '빅 픽처'의 세상이다. 크게 보고, 자세히 보고, 길게 보아야 한다. 바로 승자의 콘셉트(Winning consept for business)이다. 승자의 콘셉트는 넓게 보고(the broad scan),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고(the close look), 또 긴 관점으로 평가하는(the long view and review)것을 뜻한다.
2. 관리란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고, 리더십이란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다. 리더의 소명은 통솔이다. 내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겨, 그가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이다. 이를 위해 조직원의 의혹을 해소시키고, 신뢰를 얻어내야 하며, 다소 제한된 정보만으로도 일을 성취시킬 수 있는 열정에 불을 붙여야 한다. 결국 리더가 바라는 것은 나의 성취보다는 구성원의 성취다.
리더의 소명은 구성원에게 방향을 일러주고 책임을 지는 것이다. 물론 책임의 무게가 가볍지는 않다. 수많은 구성원들의 일자리가 걸려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부담감에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이 배가 무사히 항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바로 리더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3.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경제적 자유를 얻는 방법은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든가,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철학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오전 8시에 도서관에 가서 밤 10시에 집에 돌아갈 때까지 밥을 두 번 먹는 데 16,000원, 커피 한 잔 마시는 데 3,000원을 쓴다면. 남은 생의 대부분을 이런 식으로 보낼 것 같은데, 99세까지 계산해 봐도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평생 도서관을 다니며 책을 계속 읽고 쓰면. 충분한 수입이 생긴다. 책을 출간하면 일단 인세가 들어오고, 책과 관련된 강연료 수입이 생긴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다.
지금 이 순간 경제적 자유를 얻는 방법, 첫 번째,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살 때 얼마가 필요한지 계산해 본다. 두 번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알아낸 다음 99세까지 그 일을 하면서 살려면 얼마가 필요한지 계산해 본다. 만약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심해서 죽을 때까지 경제적 자유는 못 얻겠네 싶다면 다음 단계로 가면 된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철학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필요한 만큼만 벌면 된다. 그 이상의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으로 돈의 노예가 되는 순간, 더 이상 자유는 사라진다. 돈에 욕심을 버리는 순간 자유로워진다. 자유로운 사람이 창의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돈에 끌려다니는 사람보다 돈을 더 잘 벌 수밖에 없다. 이게 창조하는 삶(Creative Life)의 법칙이다.
4. 오늘 우리는 자신의 삶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내 삶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어디에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 어디에도 얽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상의 눈치를 살피면 살필수록 남들과 비슷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들여다보고 그 한 가지만 파면 탁월해 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눈치를 보며 이것저것 스펙을 다 쌓다 보면 두리뭉실 어디에나 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불안한 마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며 자책하며 사는 삶, 여기에 휘둘리면, 모두가 무한경쟁에 빠지는 지옥이 된다. 모두가 위만 바라보고 죽도록 달리는데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 세상에서 허우적 거리게 된다.
동방의 등불 삶의 8진법은 혼자서도 학습할 수 있다. 즉 인간미·도덕성·예의범절의 토대 위에 겸손과 나눔, 사랑과 봉사의 실천으로 가정적으로 행복한 삶,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 봉사적으로 자비로운 삶, 사회적으로 책임지는 삶, 신체적으로 건강한 삶, 여가적으로 즐거운 삶, 정신적으로 거룩한 삶, 지성적으로 지혜로운 삶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직하고 진실하게, 청렴하고 공정하게, 성실하고 행복하게, 현명하고 품격 있게, 보람 있고 우아한 인생! 조화롭고 거룩한 삶을 살다가 사회에 유산을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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